몰레 치칠로는 오악사카의 장례 문화와 깊은 관련을 가진 음식으로, 공동체의 정체성과 감정을 전승하는 전통 요리이다.
오악사카의 전통 장례 음식인 몰레 치칠로는 단순한 요리를 넘어 공동체와 문화의 기억을 전하는 음식이다.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 지역의 전통 음식은 단순한 식재료의 조합이 아닌, 세대와 공동체, 그리고 감정이 깃든 문화적 상징이다. 그중 몰레 치칠로(Mole Chichilo)는 일반적인 축제 음식이 아닌,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에서만 등장하는 특별한 음식이다. 오랜 시간 동안 조상의 기억을 전하고 고인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아 온 이 음식은, 오악사카의 요리 전통과 사회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오악사카 몰레 중 가장 어두운 성격을 지닌 몰레 치칠로
몰레 치칠로는 오악사카를 대표하는 일곱 가지 몰레 중에서도 장례에만 쓰이는 독특한 음식이다. 치칠로는 슬픔을 표현하는 어두운 색과 쓴맛이 특징으로, 장례식 전날 가족들이 고인을 위해 준비한다. 특히 매운 고추를 불에 구워내는 조리법은 감정의 상징적 표현으로 여겨지며, 고인을 애도하는 문화적 행위로 작용한다.
다른 몰레는 며칠에서 일주일에 걸쳐 조리되는 반면, 치칠로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해 단 하루 만에 완성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고추는 안초 네그로(ancho negro)나 칠후아클레(chilhuacle)로, 각각 훈연향과 쓴맛이 강해 죽음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재료와 조리법에서 드러나는 지역성과 유연한 계승
몰레 치칠로는 지역과 가정에 따라 재료와 방식이 조금씩 달라진다. 기본 구성은 안초나 칠후아클레 고추를 중심으로, 깨, 마늘, 양파, 오레가노, 백리향, 커민, 아보카도 잎, 그리고 옥수수 반죽인 마사(masa)가 포함된다. 또르띠야를 태운 후 이를 곱게 갈아 넣는 것도 이 음식만의 독특한 풍미를 더한다.
칠후아클레 고추는 오악사카 북부 카니아다 지역에서만 재배되는 희귀 품종으로, 병해에 취약하고 생산 비용이 높아 대량 사용이 어렵다. 이에 따라 많은 가정에서는 안초 또는 물라토 고추로 대체하는데, 이는 전통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조리 과정에서 재료를 메타테(metate)라는 전통 도구로 곱게 갈아내고, 약불에 오래 볶아 수분을 날린 후 육수를 천천히 더해 점도를 맞춘다. 마지막으로 마사 반죽을 더해 특유의 질감과 풍미를 완성한다. 완성된 몰레 치칠로는 주로 닭고기나 쇠고기와 함께 제공되며, 또르띠야와 곁들여 식사로 마무리된다.
전통 요리사들이 지켜가는 몰레 치칠로의 명맥
몰레 치칠로의 전통을 현대에 이어가고 있는 인물로 루이스 에반헬리나(Luis Evangelina Aquino Luis)가 있다. 2021년 대모의 장례식에서 직접 몰레 치칠로를 준비하며 전통 요리사(cocinera tradicional)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는,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Nana Vira’를 통해 이 음식을 알리고 있다. 또한 워크숍을 열어 조리법과 문화적 의미를 전하며 지역 사회에 교육적 기여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셰프 탈리아 바리오스 가르시아(Thalía Barrios García)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몰레 치칠로를 재해석하고 있으며, 이처럼 치칠로는 획일화된 조리법이 아닌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반영한 ‘살아있는 음식’으로 전해진다.
여행자와 미식가가 주목하는 문화 체험의 일환
몰레 치칠로는 여전히 오악사카 지역에 국한된 음식이지만, 최근에는 미식가와 여행자들 사이에서 특별한 문화 체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부 전통 식당에서는 사전 예약이나 특정 날짜에 한정하여 제공하며, 지역 식도락 투어에서도 몰레 치칠로를 포함한 체험 프로그램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멕시코 전통 음식의 서사적 가치와 깊이를 재조명하는 움직임과 맞물려, 몰레 치칠로의 문화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소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조상을 기리는 음식으로서의 문화적 상징성
몰레 치칠로는 단지 한 끼 식사를 넘어, 공동체의 애도와 기억의 표현이자 전통을 지키는 상징이다. 조리 과정에서 느껴지는 깊고 쓴맛은 그 순간의 감정을 집약한 결과물이며, 고인을 기리는 마음과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오악사카의 음식문화 속에서 몰레 치칠로는 과거와 현재, 생과 사를 잇는 매개체로 기능하며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