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과 로만, 같은 2.4m 망원경의 다른 우주
허블과 로만 우주망원경은 같은 2.4m 주경을 사용하지만, 시야·관측 방식·운용 환경에서 차이를 보이며 각기 다른 우주 탐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1990년대 우주 관측의 새 지평을 연 허블 우주망원경과, 2026~2027년 발사를 앞둔 로만 우주망원경은 모두 2.4m 주경을 사용한다. 그러나 관측 방식과 설계 목적, 과학적 임무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서로 다른 시대를 대표하는 천문학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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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망원경은 외형상 유사하지만, 구조와 운용 환경, 수집 데이터의 양과 활용 방식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관측 철학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로만은 허블과 같은 크기의 거울을 사용하지만, 훨씬 넓은 시야와 고효율 탐사 성능으로 차세대 광역 관측의 중심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동일한 주경, 달라진 광학 설계
허블과 로만은 모두 2.4m 직경의 주경을 갖춘 망원경이다. 허블은 리치크레티앙 방식의 2거울 시스템을 사용하며, 로만은 삼거울 아나스티그마트 방식을 채택한다. 겉보기에는 동일한 크기지만, 로만은 초점거리가 짧고 광학계가 달라 훨씬 넓은 관측 범위를 제공한다.
이러한 설계 차이는 단순한 시야 차이를 넘어, 전체적인 과학 임무 구성과 관측 전략에도 큰 영향을 준다. 로만은 NASA가 미국 정찰위성용 거울 자산을 기증받아 재설계한 사례로, 민간 기술과 과학 관측이 연결된 독특한 배경도 갖고 있다. 허블이 좁은 시야에서 정밀 관측을 수행해왔다면, 로만은 훨씬 넓은 하늘을 한 번에 담아낼 수 있다.
관측 파장과 시야 차이
허블은 자외선부터 근적외선까지 넓은 파장대를 다룬다. 이 덕분에 별의 형성과정이나 젊은 은하의 활동 등을 포괄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반면 로만은 가시광에서 근적외선 영역을 집중적으로 탐사하며, 자외선 영역은 배제한다. 이는 로만이 광역 서베이와 적색편이 탐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시야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허블의 대표적 적외선 카메라인 WFC3-IR이 약 0.002 평방도(deg²)의 시야를 가진 반면, 로만의 광시야 기기(WFI)는 무려 0.28 평방도를 커버한다. 이는 허블 대비 100배 이상의 시야로, ‘핀포인트 관측’과 ‘파노라마 탐사’라는 대비가 뚜렷하다. 이처럼 로만은 시간당 수백 개의 은하를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는 대규모 탐사형 망원경으로 설계되었다.
탑재 기기와 임무 설계
허블은 다양한 기기(WFC3, ACS, COS, STIS 등)를 통해 우주 초기 은하, 성간물질, 외계행성 대기 분석 등 폭넓은 임무를 수행해왔다. 로만은 단 2개의 기기만 탑재하지만, 그 기능은 매우 집중적이고 효율적이다. 3억 화소의 광시야 적외선 카메라(WFI)는 다수의 은하를 한 번에 탐사할 수 있고, 코로나그래프(CGI)는 외계행성의 직접 이미지 촬영을 목표로 한다.
CGI는 NASA가 미래의 외계생명 탐사를 위한 기술 기반으로 개발 중인 핵심 장비로, 실제 우주환경에서 작동하는 최초의 고대비 관측 장비이다. 향후 수십 년 내 실행될 차세대 플래그십 망원경의 기반 기술 검증 역할도 겸한다.
운용 궤도와 접근성
허블은 지구 저궤도(약 515km)에 위치해 있어 우주왕복선이 접근 가능했고, 실제로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유인 수리가 이루어졌다. 우주비행사가 카메라를 교체하고 고장 부품을 직접 수리한 사례는, 허블이 마지막으로 유인 정비를 받은 대형 우주망원경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반면 로만은 태양-지구 L2 라그랑주점에 위치하게 된다. 이는 지구에서 약 150만 km 떨어진 거리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과 같은 운용 환경이다. 이 궤도는 열 안정성과 관측 효율성 면에서 유리하지만, 고장 시에는 로봇 기술 또는 소프트웨어 패치에 의존해야 하며 즉각적인 물리적 접근은 불가능하다.
데이터 양과 분석 환경
허블이 주당 약 140GB의 데이터를 전송했던 데 반해, 로만은 하루 수 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전송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저장과 분석이 필수화되며, 전통적인 데이터 처리 방식은 점차 머신러닝 및 자동 분류 시스템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데이터 양도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시민과학 프로젝트, 예를 들어 Galaxy Zoo 후속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일반인의 참여도 크게 확대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천문학 연구에 있어 대중 참여의 비중이 커지는 흐름과도 연결된다.
과학 임무: 암흑에너지부터 외계행성까지
로만은 고적색편이 초신성 관측과 약한 중력렌즈 분석을 통해 암흑에너지의 방정식 상태 w(z)를 정밀 측정할 계획이다. 이는 우주의 팽창 가속 원인을 밝히고, 우주론 모델을 검증하는 핵심 데이터를 제공한다.
외계행성 탐사에서도 차별성이 있다. 허블은 대기 분석 중심의 트랜짓 및 분광 관측을 통해 행성의 성분을 파악했으나, 로만은 중력렌즈를 활용해 훨씬 더 멀고 어두운 외곽 행성까지 통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CGI는 목성형 외계행성의 직접 이미지를 촬영하는 최초의 시범 도전으로, 행성 탐사의 새 장을 여는 기술이다.
협업과 후속 미션
로만은 허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허블은 가시광, JWST는 고해상 적외선, 로만은 광역 적외선 영역을 커버함으로써, 하나의 천체를 다양한 관점에서 관측할 수 있다. 이는 단일 망원경으로는 얻기 힘든 종합적인 우주 분석 결과를 가능하게 한다.
2040년대를 목표로 한 후속 플래그십 미션인 Habitable Worlds Observatory(HWO)는 로만의 CGI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이 망원경은 궁극적으로 지구형 외계행성의 이미지 촬영을 목표로 하며, 외계 생명 존재 가능성을 직접 조사할 수 있는 최초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우주 관측의 전환점, 로만의 역할
허블은 정밀한 시야로 우주의 깊이를 탐사하고, 초기은하의 존재와 구조를 밝혀내며 우주의 나이와 진화에 대한 이해를 크게 넓혔다. 로만은 광시야와 대용량 데이터 처리 역량을 바탕으로, 통계적 우주학과 외계행성 탐사의 폭을 넓히며 관측 방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두 망원경은 같은 크기의 거울을 공유하면서도, 관측 철학과 운용 기술에서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천문학은 이처럼 시대마다 다른 질문을 던지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주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진보한다.